마음 한켠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바램이 커져 기어이 실행에 옮기게 된다.
불현듯 간이역이 보고 싶다는, 그것도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을
쉬지않고 차를 몰라 도착한 곳 "서도역"
지금은 "구서도역영상촬영장"이라 이름 붙여진 조그마한 폐역이다.
1931년 문을 연 서도역은 전라선개량사업으로 신 서도역이 생기면서 2002년 폐역이 되었다.
여느 간이역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역사가 목조건물이라는 점이 생경스럽기도 하고,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오히려 평범한 풍경에 놀라게 되는 그런 곳이다.
아침에 이방인이 찾아와 이 조용한 마을에 사부작대는 모양새가 좋지않아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이 공간에 나만이 서 있어 마당에 깔린 자갈밭을 걸을때 자그락거림도 크게 들린다.
역사 뒤편으로 들어와 철길을 건너 뒤돌아보니 마치 흑백사진처럼 풍경이 펼쳐진다.
실제 기차가 다니는 철로에서는 사진 촬영이 자유롭지 못한데 여기서는 마음껏 철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옛 보선사무소 건물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목재 건물이다.
서도역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남원읍내로 장을 보러가거나 통학하는 학생들로 붐볐던 곳이다.
지금 인기척 없는 플랫폼에는 배롱나무꽃이 피어 그나마 황량함을 달래고 있다.
구서도역의 배롱나무꽃
역사옆 철길끝자락에 레일바이크가 서있다. 찾는 이가 드물어 이마저도 멈추어 있다.
그래도 철길을 따라 등나무 터널이 넓게 드리워져 있어 그 안에서 바라보는 철길의 풍경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구서도역의 등나무터널
역사 옆에 자그마한 공원에 각종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에 최명희 소설가의 혼불의 원고 4만6천장의 원고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대합실로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창문너머로 역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무더운 여름날 한참을 이곳저곳을 서성이다 다시 돌아와 역사 앞 나무 그늘아래에서 물 한 모금과 땀을 식혀본다.
폐역이 된 이곳이 그나마 철거될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보존의 의미를 아는 이들이 영상촬영장이라는 이름으로나마 붙들어 놓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도역의 여름에 서 있다.
이전된 신서도역도 기차가 서지 않는다고 한다. 멀리 바쁜 열차가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
온 김에 구서도역에서 나와 다시 혼불문학관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다란 잔디밭에 혼불문학관이 펼쳐진다.
조경이 문학관과 어울려 참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명희 소설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고 문학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최명희 소설가의 어록중 일부를 적어본다. 글쓴이의 마음이 새삼 느껴진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는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금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어여쁜 이름을 가지고 멀리 지리산의 품이 보이는 멋진 누각을 가진 꽃심관이다.
문학관 뒤편으로 가니 잔디밭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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